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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사 템플스테이

노고단을 그대 품안에~
지리산 천은사와 함께 나를 위한 행복여행을 떠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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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전


부도(浮屠)는 부두(浮頭), 불도(佛圖), 포도(蒲圖)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기도 합니다. 어원적으로는 부처님을 뜻하는 인도의 옛말 붓다(Buddha)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탑을 뜻하는 스투파에서 나왔다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부도라고 하면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을 의미합니다.우리 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뒤부터는 주검을 화장하여 그 유골을 거두는 장골(藏骨)이라는 불교식 장제가 널리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부도가 건립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선종이 크게 일어남에 따라 스님들의 지위가 높아져 불탑처럼 스님의 부도도 많이 건립하게 되었습니다.부처님의 진신사리나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경과 불상 등 법신사리를 봉안한 불탑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곳에 건립하는 반면에 승탑인 부도는 사찰 주변의 호젓한 곳에 석비와 함께 조영되었습니다.
부도는 불탑과 구분하여 단층의 건물 모양을 하고 있으며 고려시대부터는 석등이 함께 조성되기도 하였습니다. 부도는 기본적으로 팔각원당형과 종형 또는 복발형의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불탑과 마찬가지로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륜부는 불탑보다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탑비(塔碑)는 고승의 부도에 부속되어 석조로 조영되는 것으로써 일반적으로 대왕의 석비나 묘비와 그 형태는 동일하나 불교의 유물인 까닭에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탑비에는 고승의 일평생 행적이 건립 년월일과 함께 새겨 지고 있어, 그 비문의 내용이 역사적으로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서체는 금석학의 입장에서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기도 한다. 탑비는 맨 밑에 구부(龜趺)가 조각되고, 그 위에 비신(碑身)이 세워지며, 상부에는 용 머리가 구름과 함께 화려하게 조각 장식되어 집니다.
천은사 부도전은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 좌측(향우)으로 약간 언덕인 산비탈에 석비(石碑) 2기와 함께 10여기 부도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속한 것들입니다. 부도가 조사를 숭배하고 이를 기리는 문손들의 공경심에서 우러나온 작업이라면 통일 신라시대 이후 계속하여 이어졌을 법도 한데 고려중기 이후 조선초기까지의 기간이 공백으로 남아있으니 이점에 대해서는 별도의 과제로 남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범란당 부도


연화문을 엷게 조식한 원형의 대좌에 상후하박인 고복형의 탑신을 얹어놓았다. 옥개석은 방형으로 상면에는 전후좌우 사방에 세줄의 기왓골형을 조각하였으며 그 위에 보주를 표출하였다. 탑신 전면에는 「범난당영재탑(梵鸞堂英宰塔)」(자경 7cm)이라 음각명문하였고 뒷면에는 「불기이구오육년경향법려입(佛紀二九五六年京鄕法侶立)」(자경 3.7cm)이라 썼다.위 명문에 의하면 이 부도는 1929년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총고 128cm, 대좌직경 48cm)



용담당 부도


이 부도는 천은사부도군(일주문옆)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숲속에 위치하고 있다. 천은사 부도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부도이다. 대좌는 원형인데 앙연이 조식되었으며 그 사이에 기둥을 세워 8면을 구분하였다. 탑신은 타원형인 고복형으로 하단에 예리한 꽃잎을 장식한 16엽연화문이 조각되었다. 역시 탑신 상단부에도 16엽연화문이 엷게 장식되었다. 탑신 전면에 「용담당(龍潭堂)」(자경 15cm)이라는 당호를 새겨놓았다. 상륜은 별석으로 하여 노반과 보륜·보주를 올려놓았다.(총고 170cm, 대좌직경 75cm)
부도 바로 앞에는 이 부도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석비가 있다. 비석크기는 총고 93cm, 폭 377.7cm, 두께 10.4cm로 전면에 「용담대화상사리탑(龍潭大和尙舍利塔)」(자경 6.3cm)이라 명문하였으며 뒷면에는 「숭정기원후임우십월일입 합사 전영 도감진초 별좌포성 주지 책영 홍주 차준 환척(崇禎紀元後壬午十月日立 合寺 全營 都監震楚 別座抱性 住持 策英 洪主 此俊 幻倜)」라 음각하였다.
위 연대는 석비가 중앙에 균열되어 확실치는 않으나 "삼(三)"자가 결락된 것으로 보이는데 위"삼(三)"자가 확실하다면 위 연대는 1762년(임우, 영조38)으로 보아 틀림없을 것같다. 왜냐하면 남원출신인 "용담당"의 입적연대가 1762년이기 때문이다. 용담은 조관스님(1700∼1762)의 법호(法號)로서 전라남도 남원출신이며 19세기 감노사(지금의 천은사)에서 삭발하고 영·호남의 명사들을 찾아 선(禪)과 교(敎)를 두루 섭렵하였다



영해당 부도


기단부에 중석이 없는 앙·복련이 장식되고 그위에 유곽이 없는 9개의 유듀만이 표출된 고복형의 탑신이 올려져 있다. 상륜은 앙련이 조식된 보주가 안치되어있다. 전면)에 「영해당정원지탑(影海堂正源之塔)」(자경 5cm)이라 명문하고 후면에는 「불기이오삼사년이월일(佛紀二五三四年二月日)」(자경 4cm)이라 썼다. 이 부도는 최근에 세운 것이다. (총고 170cm)



印大부도


비교적 잘다듬어진 8엽의 앙연을 조식한 원형의 대좌 위에 고복형의 탑신을 얹어놓았으며 그 위로는 4각형의 넓고 큰 옥개석을 올려놓았다. 옥개석 상면으로는 우동마루가 있고 그 사이에 기왓골이 조식되었다. 상륜부는 별석으로 하여 노반과 복발·보륜·보주를 장식하였다. 탑신에 당호의 명문이 마모되어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다. 조성시기는 조선후기로 추정된다. (총고 170cm, 대좌직경 66cm)



성당대사(性堂大師) 부도


비자연석을 약간 다음에 대좌로 삼고 그위에 별석으로 탑신을 올려놓았다. 탑신은 하후상박형의 석종형인데 하단에 두줄의 양각띠를 두르고 상단은 네군데에 유곽과 그 안에 9개의 유두를 조식하였다. 탑신전면에「성당대사(性堂大師)」(자경 8cm)라 명문하고 조성연대는 기록하지 않았다.상륜부는 탑신과 일석으로 하여 노반과 보륜·보주를 안치하였다. 조성시기는 조선후기로 추정된다. (총고 140cm)



장성서씨 부도


천은사의 10여기 부도중 맨앞줄에 위치하고 있다. 지대석 없는 연화문을 조석한 앙연의 원형대좌에 반구형의 탑신을 앉히고 그 위로 방형의 옥개석이 연결되었다. 옥개석 상면은 각 모서리에 우동이 보이고 각4면으로는 팔작지붕형인 합각이 모각되었으며 정상에는 일석으로 하여 보주를 앉혔다.부도의 전면(前面)에는 「장성서씨사리탑」(자경 9cm)이라 쓰고 뒷면으로는 「씨칠십사가경이년정사치출사리무년이월자김추동입(氏七十四嘉慶二年丁巳齒出舍利戊年二月子金秋東立)」(자경 4cm)이라 음각하였다.위 내용에 의하면, 1797년(정조(正祖 21) 74세로 입면한 장성서씨의 치아사리를 그 다음해인 1798년(무오)에 그 아들 김추동이 세운 보도임을 알 수 있다.(총고 130cm, 대좌직경 50cm)



현공처사 부도


자연암반을 지대석으로 삼아 그 위로 원형의 대좌 탑신과 옥개석을 올려놓았다. 대좌는 원형으로 아무런 조식이 없으며 탑신은 고복형인데 전면에 「현공처사박」(자경 4.5cm)이라 음각하였으나 밑부분이 판독불능이다. 후면에도 역시 장방형의 액면을 모각하고 그 안에 글자를 새겼으나 마모가 심해 판독을 할 수 없다.옥개석은 8각으로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상면에는 우동마루가 표출되었으며 전각에 이르러서는 약간의 반전을 보였다. 상륜부는 옥개석과 일석으로 하였고 3단의 원형띠를 두르고 있다. 조성시기는 조선후기로 보인다.(총고 112cm, 대좌직경 68cm)

일주문


일주문(一柱門)은 사찰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건물로 산사에 들어서면 맨먼저 만나게 되는 문으로써 절 이름의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사찰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통과해야 하는 문이 일주문입니다. 이 문은 기둥이 일직선상에 나란히 있다고 하여 일주문이라 하는데 보통 사찰의 입구에 세워져 속세와 불계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즉,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적인 번민과 욕망을 벗어버리게 하는 의식적인 상징물로서 건축적으로는 일직선 기둥 위에 지붕만을 올리는 것이 특징입니다.
이 문을 통과하는 순간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 일심(一心)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일주문을 기준으로 해서 승과 속의 경계가 이루어지며 세간과 출세간, 생사윤회의 중생계와 열반적정의 불국토로 나누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주문의 지붕은 대개가 다포계의 맞배 지붕을 하고 있으며 보통 소속산문과 사찰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을 걸어 사찰의 소속과 격을 알립니다.




국립공원 천은사 매표소가 있는 산문을 지나 300여 미터를 더 올라가면 왼쪽으로 천은사의 넓은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 끝에 천은사 일주문이 있습니다. 천은사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입니다. 천은사 일주문은 그 주변의 풍광과 어울려 절경으로 이름이 나 있습니다. 일주문에 걸려 있는 현판(90x114)은 <창건과 역사>에 언급했던 것처럼 조선의 4대 명필가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圓嶠 李匡師, 1705~1777)가 마치 물 흐르듯 수기를 불어놓은 수체(水體) 글씨로 썼습니다. 이 글씨를 현판으로 일주문에 걸면서부터 다시는 화재가 생기지 않았다는 신기한 얘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지금도 일주문 아래에서 가만히 귀기울이면 현판글씨에서 신운(神韻)의 물흐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일주문 옆으로는 낮은 담장을 둘러 공간감을 절묘하게 살리고 있습니다.

수홍루


일주문을 지나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위로 무지개 다리가 놓여 있는데 이 계곡 위에 놓인 다리를 보통 피안교라 부르고 있습니다. 피안이란 온갖 번뇌에 휩싸여 생사윤회하는 고해의 이쪽 언덕 건너편에 있는 저 언덕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곳은 아무런 고통과 근심이 없는 불·보살의 세계입니다. 따라서 피안교란 열반의 저 언덕에 도달하기 위해 건너는 다리를 뜻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사찰에 갈 때 피안교를 건너는 것은 세속의 마음을 청정하게 씻어버리고 이제금 진리와 지혜의 광명이 충만한 불·보살님들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만큼 불자들은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돌이켜 보는 경건한 자세가 필요하겠습니다 .
천은사에는 그 다리 위에 2층 누각인 수홍루가 있습니다. 수홍루는 정면 1칸, 측면 한칸인 2층 누각으로 조선후기에 만들어졌습니다. 계곡과 어우러진 누각은 천은사를 대표하는 경치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아릅답습니다. 정면 현판의 글씨는 염제(念齊) 선생의 글씨입니다.



소나무 숲 탐방로


천왕문


수홍루를 지나면 위로 오르는 계단이 나오고 그 끝에 정면 3칸, 옆면 2칸의 천왕문(天王門)이 서 있습니다. 천왕문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을 모셔놓은 전각으로 수행의 중간단계를 의미하며 속세의 잡귀가 불세계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또한 천왕문은 수행의 중간단계를 의미하는 불가의 세계인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천왕의 궁궐을 형상화하여 세워졌습니다. 천왕문 앞에는 사찰에 따라 금강문을 세우기도 합니다.
천왕문은 불국토를 지키는 동서남북의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이것은 불법을 수호하고 사악한 마군을 방어한다는 뜻에서 세워졌습니다. 사천왕은 33천중 요계 6천의 첫 번째인 사천왕천의 지배자로서 수미의 4주를 수호하는 신으로 호세천이라 하며, 수미산 중턱 4층급을 주처로 하는 신이다.
불가(佛家)에서 사천왕천은 욕계6천의 첫 번째 문이자 수미산 세계이 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그곳에 이르면 좌우에 해와 달의 세계가 빛나고 그 위로는 수미산 정상부 도리 33천의 하늘이 펼쳐진다. 사천왕은 이러한 수미산의 4주에 위치하면서 각각이 세계르르 수호하고 있다.




천은사 사천왕


지국천왕은 건달바와 부단나 등의 신을 거느리고 동쪽 하늘을 수호하며, 광목천왕은 용과 비바사라는 신을 거느리고 서쪽 하늘을 수호하며, 증장천왕은 구반다와 폐려다라 불리우는 신을 거느리고 남쪽하늘을 수호하며, 다문천왕은 야차와 나찰을 거느리고 북쪽하늘을 계절적으로는 봄을 관장하고 있다고 한다.
광목천왕은 손에 용과 여의주 또는 견색을 들고서 인간의 노여움의 감정을 다스리고 여름을 주관하고 있다고 한다. 증장천왕은 손에 칼을 들고서 사랑의 감정을 관할하며 겨울을 다스리고 있다고 한다. 다문천왕은 손에 보탑이나 깃대를 들고 있으며 즐거움의 감정을 관할하며 겨울을 다스리고 있다고 한다.
구 분 방 위 거느리는 신 지 물 계 절 인간감정 수호 세계
지국천왕 (持國天王) 긴달바, 부단나 비파 기쁨 승신주(勝身洲)
역할 선한이에게는 복을 주고 악한이에게는 벌을 준다.
광목천왕 (廣目天王) 용, 비바사 용,여의주, 견색 여름 노여움 우화주(牛貨洲)
역할 악인에게 고통을 주어 불심을 갖게 한다.
증장천왕 (增長天王) 구반다, 폐려다 보검 가을 사랑 섬부주(贍部洲)
역할 만물을 소생시키는 자바를 베푼다.
다문천왕 (多聞天王) 야차, 나찰 보탑, 깃대 겨울 즐거움 구로주(瞿虜洲)
역할 방황하는 중생을 구제한다.

운고루


보제루 오른쪽으로 도량의 중정(中庭-한 가운데 정원)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고 그 계단을 오른쪽 축대 위에 운고루(雲鼓樓)가 있습니다. 보통 루(樓)형식으로 예불시에 치는 사물이 걸려 있으며 흔히 범종루(梵鐘樓) 또는 종고루라고도 합니다. 이 종각에는 예불이나 행사시에 치는 사물(법고·운판·목어·범종)이 있는데 조석 예불시에 연주하여 그 소리를 통해서 세상에 모든 생명이 있는 것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대승불교의 큰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사물(四物)

목어(木魚)
나무를 물고기 모양으로 하여 배부분을 파내고 안쪽의 양벽을 나무채로 두들겨 소리를 내는 법구이다. 소리로써 물속에 사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물고기의 모습에서 점차 머리 부분만 용의 모습으로 하여 용두어신(龍頭魚身)의 모습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한편 목어는 물고기가 눈을 깜빡이지 않는 것처럼 수행에 힘쓰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범종(梵鐘)
범종은 절에서 대중을 모으기 위해서나 때를 알리기 위해서 치는 큰 종으로, 흔히 종루를 짓고 달아두는데, 시대에 따라 모양과 크기가 일정하지 않다. 즉 ‘범종’이라고 하는 것은 불교사찰에서 쓰는 종이란 뜻으로, 청정한 불사에 사용하는 종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범종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법구이다. 즉 범종의 소리는 우주의 모든 중생의 영혼을 교화하고 제도하기 위하여 울리는 대자대비의 음성인 것이다. 한국범종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신라양식과 고려양식, 조선양식으로 약간씩의 양식변천을 이루었다. 신라종과 고려종의 양식은 순수한 우리 선조의 창의력에서 이루어진 형식인데 반하여 불교 배척시대였던 조선조 범종 양식은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이른바 한·중 혼합양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다시 신라종 형식이 한국종의 절대적인 양식으로 널리 유행하여 조성되고 있다.

북(鼓)
법고(法鼓)라고도 하며, 군사적 용도가 사찰로 유입되어 군중을 모으는 불구로 이용되었다. 북소리가 널리 울려 퍼지듯 불법을 중생들에게 널리 전하여 세간에 있는 모든 중생들에게 널리 전하여 세간에 있는 모든 중생들의 번뇌를 끊고 해탈을 이루게 한다는 의미이다. 법고의 소리에는 지상의 모든 축생을 제도하는 불법의 의미가 담겨있다. 또한 불법이 널리 세간에 전해지는 것을 북소리가 퍼지는 것에 비유한 것이며, 교법이 중생의 번뇌망상 또는 집착과 오욕의 마군을 없애는 것이 마치 진을 치고 있던 군대들이 북소리가 울리면 전진하여 적군을 무찌르는데 비유하였다. 또한 선종사찰에서는 구조 법당의 동북쪽에 달아 놓고 주지의 상당(上堂)과 소침, 보설, 입실 등의 법요의식에 사용한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는 아침, 저녁 예불 때와 법요식을 거행할 때에 법고를 친다.

운판(雲版)
청동이나 철로 만든 구름 모양의 법구로써 소리를 내어 허공에 날아다니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의미이다. 모양에 따라 화판 또는 장판이라고 불렀다. 선종사찰에서는 재당이나 부엌에 매달고 대중에게 끼니 때를 알릴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죽이나 밥을 끓일 때에 세 번 침으로 화판, 끼니 때에 길게 침으로 장판이라고도 한다.

보제루


천왕문을 지나 마당으로 나가면 정면으로 2층으로 지어진 누각이 당당하게 서 있는 보제루의 모습이 보입니다. 보제루란 대중의 법요식(法要式) 집회소로 사용하는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후면만 중이층으로 구성한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입니다. 강당형식으로 내부는 우물마루를 깐 대청형식으로 꾸몄습니다. 현판은 1934년 호남명필 이삼만(李三晩)이 썼습니다. 이 현판 글씨는 단아한 보제루와 잘 어울리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설명] 보제루의 구조는 막돌초석위에 원통형(일부는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운 5량가이며, 공포는 행공첨차를 두어 외목도리를 받게한 2익공식이다. 공포 역시 연봉조각이 올려져 있는 등 화려하다.

설선당


종고루 바로 다음 건물은 설선당입니다. 'ㄷ'자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 건물로 정면 6칸, 측면 6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지실과 종무소 그리고 스님들의 요사채로 쓰고 있습니다. 이 건물은 주 출입구를 중정쪽에 두지 않고 그 반대편에 두어 본전공간의 성스러움을 배려했고 아울러 개개 건물의 기능성도 최대로 살렸습니다. 구조는 막돌초석형 두리기둥을 세운 2익공양식이며 부분적으로 편리하게 툇마루를 설치하였습니다. 맞은 편에 있는 회승당과 함께 퇴색된 기둥 나무색과 아름다운 기와의 곡선으로 중정을 아늑하게 해 주어 찾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있습니다.

회승당


회승당(會僧堂)은 맞배지붕에 ‘ㄷ’자 모양의 건물로서 요사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전면 마루 끝에는 범종이 있는데, 몸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1778년(정조2)에 봉안된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명문은 부조(浮彫)로 된 부분과 점각(點刻)으로 된 부분이 있으며 1778년에 해당되는 건륭 연호는 부조로 되어 있고 점각 부분에도 1880년(고종17)에 해당되는 연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1880년에 약간의 보수가 있었던 듯합니다. 명문으로는 그 밖에도 ‘풍진명(豊鎭溟)’ 및 ‘남원천은부원중종(南原泉隱府院中鐘)’등의 글이 있습니다. 종을 자세히 살펴보면 조그만 총알구멍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6.25 때 이곳 지리산의 형편이 어떠했는 가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야생차밭


삼성전


삼성전은 관음전 우측(향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현재 ‘삼성전’과 함께 ‘칠성전’, ‘산왕각’ 현판이 함께 걸려 있습니다. 안에는 치성광여래상과 독성상, 산신상, 동자상 2체가 봉안되었으며, 불화로는 최근에 그려진 칠성탱화 및 독성탱화, 산신탱화가 있습니다.




칠성


칠성이란 북두칠성을 일컫는 것으로, 사찰에 칠성을 모시게 된 것은 중국의 도교사상이 불교와 융합되어 나타난 현상때문이다. 도교에서는 칠성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맡고 있다고 하여 칠원성군 또는 칠성여래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칠성의 주존으로는 치성광여래를 모시는데, 손에 금륜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좌우에 협시로 배치된다. 칠성탱화의 구도에는 여러가지 형식이있다. 먼저 칠원성군만 그리는 경우와 치성광여래와 좌우 협시보살 및 칠원성군을 그리고나서 칠성여래와 자미대재 태산노군(남극노인)을 그리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다시 삼태6성, 28숙 등 수많은 권속들을 배치하는 경우도 있다. 또 칠원성군이나 칠성여래를 각각 1위씩 7폭으로 그려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독성


우리 나라에서 말세의 복밭이라고 신앙되는 나반존자가 정확히 어떤 분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머리카락이 희고 눈썹이 긴 모습으로 보아 16나한의 한 분인 빈도라발라사가 아닌가 여겨진다. 빈두로존자라고도 불리우는 빈도라발라사는 코삼비국 재상의 아들로서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하여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어느날 목건련과 시내로 탁발을 나갔을 때 어떤 부호가 전단향나무를 공중에 매달아 놓고 누구든지 신통력으로 그것을 가져가라고 하는 것을 보고 그가 신통력을 나타내어 그것을 따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외도들의 조소를 받았으므로 부처님으로부터 부질없이 신통을 나타내지 말라는 질책을 들었다. 민간신앙에서는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남인도의 마리산에 있으면서 불멸 후에 중생을 제 도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주세’ 아라한이라고도 일컫어진다.

산신


우리 나라의 사찰에서 산신을 모시는 것은 민간의 토속신앙이 불교에 융합되어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찰이 산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외호신중으로 산신령을 모시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민간신앙에서는 산에 사는 영물로 호랑이를 산군으로 모시기 때문에 산신은 언제나 호랑이를 거느리는 것으로 표현 되고 있다.

팔상전


관음전 바로 옆에 있는 팔상전은 정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1774년 무렵에 처음 세워진 건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단독으로 모셔져 있으며 그 밖에 근래에 봉안된 영산후불탱화 및 팔상도 4폭이 있습니다.
[전문적인 설명] 팔상전은 최근에 중건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각이다. 막돌로 석축겸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원통형 두리기둥을 세우고 포작을 올렸으며 공포형식은 내, 외 2출목의 다포양식으로 쇠서 단부를 날카롭게 처리하였다. 주간포(柱間包)는 각 간 모두에 1구씩 배치하였다. 가구는 양측면으로부터 충량을 걸은 5양형식이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팔상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애인 여덟장면을 탱화나 존상으로 모신 곳인데, 팔상 탱화를 봉안하고 달리 존상을 모실 경우에는 석가모니부처님과 함께 좌협시에 미륵보살, 우협시에 제화갈라보살을 모신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부처님으로부터 수기를 받아 미래에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부처님이 되실 분이고 제화갈라보살은 본래 정광불로서 아득한 과거 석가모니부처님이 수행자이던 시절 석가모니부처님이 장래에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수기를 주신 부처님이다. 따라서, 석가모니부처님과 더불어 이 두 협시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상징하고 있는 이른바 시간삼세불인 것이다




팔상도


석가모니부처님의 탄생에서부터 열반까지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설명한 그림으로 그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도솔래의상(도솔에서 내려오는 장면) : 석가모니부처님이 호명보살로 도솔천에 머물다가 마침내 사바세계로 출현하게 되자, 카필라국의 정반왕과 마야왕비의 태자로 탄생하여 도솔에서 내려오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여기에는 흰코끼리를 탄 호명보살이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있는 마야부인의 모습, 상(相)을 잘 보는 바라문에게서 꿈의 해몽을 듣는 왕과 왕비의 모습 등이 주 내용으로 묘사된다. 이 때 바라문이 이르기를 “반드시 태자를 잉태할 것이며 훗날 출가를 하면 정각을 이루어 삼계중생을 제도할 것”이라 하였다 한다.
② 비람강생상(룸비니 동산에서 탄생하는 장면) : 여기에서는 부처님의 탄생과 관련된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따뜻한 봄날에 마야부인이 궁중을 떠나 궁녀들과 룸비니 동산에 올라 무우수(無憂樹) 꽃가지를 붙들고 서서 오른쪽 옆구리로 태자를 낳는 장면, 하늘에서 제석천왕이 비단을 가지고 내려와 태자를 받으며 모든 천왕들이 온갖 보물을 공양하는 장면, 태자가 땅에서 솟아오른 연꽃을 밟고 일곱 걸음을 움직이며 한손은 하늘을 또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외치는 장면, 아홉마리의 용이 깨끗한 물을 토하여 태자를 목욕시키는 장면, 태자를 가마에 태워 궁궐로 돌아오는 장면, 아지타 선인을 불러 관상을 보이는 장면 등이 묘사된다.
③ 사문유관상(四門밖에 나가 관찰하는 장면) : 태자가 사방의 문으로 나가서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이 네 가지로 묘사된다. 동문으로 나가서는 노인을 보고 사색하는 장면, 남문 밖에서는 병자를 보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 서문으로 나가서는 장례행상을 보고 죽음을 절감하는 장면, 북문 밖에서는 사문을 보고 깨달아 출가를 결심하는 장면 등이 표현되고 있다.
④ 유성출가상(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 : 태자가 정반왕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태자를 감시하던 야수부인과 시녀 그리고 오백 장사들이 잠에 취해 있는 장면, 태자가 마부 차익에게 궁성을 뛰어 넘을 것을 지시하는 장면, 말을 탄 태자가 성을 뛰어 넘으니 제석천이 호위를 하며 하늘에 오색광명이 환하게 비치는 장면, 머리카락을 자른 태자가 사냥꾼의 옷과 자신의 비단도포를 바꾸어 입는 장면, 마부 차익이 태자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눈물을 흘리며 태자의 금관과 용포를 가지고 궁궐로 돌아가는 장면, 정반왕과 마야부인 그리고 태자비가 태자의 의관을 받고 슬피우는 장면 등이 주로 묘사된다.
⑤ 설산수도상(설산에서 수도하는 장면) : 설산에 들어간 태자가 대신들을 보내어 환궁을 종용하는 정반왕의 권청을 물리치고 신선들과 함께 수도에 정진하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정반왕이 교진여(橋陣如) 등 5인의 신하를 보내어 태자를 환궁하게 하는 장면, 이들이 태자에게 돌아가기를 간청하는 장면, 환궁을 거절한 태자에게 궁중에서 양식을 실어 보내는 장면, 6년 고행의 무상함을 깨우친 태자에게 목녀(牧女)가 유미죽을 바치는 장면, 제석천왕이 못을 만들어 목욕을 하게 하고 천인이 가사를 공양하는 장면, 태자가 수도하면서 모든 스승을 찾는 장면, 풀베는 천인에게서 길상초를 보시받는 장면 등의 많은 내용이 그려지고 있다.
⑥ 수하항마상(보리수 아래서 마구니를 항복시키는 장면) : 태자가 마군들의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고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내는 장면들이 묘사되어 진다. 마왕 파순이 마녀로 하여금 부처님을 유혹하게 하는 장면, 마왕의 무리들이 코끼리를 타고 부처님을 위협하는 장면, 마왕이 80억 마군을 몰고와 부처님을 몰아내려고 하나 창칼이 모두 연꽃으로 변하는 장면, 지신(地神)이 태자의 전생공덕과 계행을 마왕에게 증명하는 장면, 마군들이 작은 물병을 사력을 다해 끌어내려고 하나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돌비(石 雨)와 바람이 쏟아져 80억 마군들을 물리치는 장면, 드디어 마왕의 무리들이 항복되고 부처님과 모든 천신·천녀·군중들의 수희 찬탄하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⑦ 녹원전법상(녹야원에서 처음으로 포교하는 장면) : 무상전각을 이루신 부처님이 녹야원에서 최초로 불법을 설하시는 장면들이 상·하단으로 묘사되고 있다. 상단에는 노사나불의 모습을 보이신 석가삼존이 처음으로 화엄경을 설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하단에는 세존께서 녹야원에 이르러 교진여 등 5인의 비구에게 고·집·멸·도의 사제법문을 설교하는 장면, 수달다 장자가 아사세 태자의 동산을 사서 기원정사를 건립하고자 하는 장면, 흙장난을 하고 놀던 어린이들이 부처님께 흙을 쌀로 생각하고 보시하자 부처님이 이것을 탑으로 바꾸는 장면 등이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⑧ 쌍림열반상(사라쌍수 아래서 열반에 드시는 장면) : 80세가 되신 부처님이 이월 보름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마지막 설법을 마치시고 열반에 드시는 장면들이 묘사되고 있다. 사라쌍수 아래서 길게 누워 열반에 드신 부처님과 그 주위로 비탄에 잠겨 있는 사부대중과 천룡 팔부중의 모습들, 노가섭이 크게 슬퍼하자 부처님이 관 밖으로 두 발을 내 보이시는 장면, 아나율존자가 하늘에 올라가 부처님의 열반소식을 전하자 마야부인이 천녀들과 허공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꽃을 뿌려 공양하는 장면, 관이 성밖으로 저절로 들려 나가는 장면, 다비를 하니 사리가 비오듯 쏟아지는데 이 사리를 차지하려는 여덟 나라의 왕들에게 바라문이 골고루 나누어주는 장면등이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

템플스테이


명부전 뒤로 가면 방장선원으로 들어가는 작은 문이 나옵니다. 문을 들어서면 천은사를 흐르는 계류가 본당과 선원을 가로지르고 있고 그 위에 운수교가 놓여 있습니다. 이곳은 스님들이 반야의 보검을 가는 참선수행처이어서 일반인들은 일체 출입할 수 없는 곳입니다.
선원의 본체는 정면 7칸, 옆면 3칸의 맞배지붕입니다. 원래 이곳은 약사암이라는 작은 산내암자에 속했으나 근세들어 선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큰방에는 오대산 상원사 문수동자상을 본 뜬 문수동자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관음전


극락보전 뒤로 계단을 올라가면 여러 전각 중 가운데 있는 전각이 관음전입니다. 대승불교의 수많은 불·보살 가운데 중생구제를 위한 대자대비의 원력으로 대중들에게 가장 친근한 보살인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이 관음전인데, 사찰에 따라서는 원통전, 대비전, 보타전 등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과 더불어 그 협시로서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을 모시며 그 뒤에 천수천안관세음보살도나 수월관음도 혹은 아미타 후불탱화를 봉안합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은 관자재(觀自在), 광세음(光世音), 관세자재, 관세음자재라고도 번역되며 줄여서 관음보살이라고도 부른다. 법화경이나 관무량수경, 화엄경 등에 설해지고 있듯이 관세음보살은 늘 세간의 소리를 관하면서 중생들의 발원이 있으면 어느곳이든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베푸신다. 또한 선업을 많이 닦은 이의 임종시에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고 찾아와 극락으로 인도해가는 분이다. 따라서 관세음보살에게는 그 성격에 따라 다른 많은 별칭들이 붙여졌다. 중생들의 온갖 두려움을 없애준다는 뜻에서 시무외자(施無畏者)라고도 하고, 대자대비를 근본으로 한다는 뜻에서 대비성자(大悲聖者)라고도 하며, 세상을 구제하는 분이라는 의미에서 구세대사(救世大士)라고도 한다.
그런데 『법화경』에 의하면 이와 같은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의 교화를 위하여 33가지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하였고 능엄경에는 32응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불상조성의 지침서라 할 수 있는 『불상도휘』에는 당·송대에 민간에서 조성하던 관세음보살의 모습을 모아 33관음을 들고 있는데, 그만큼 관세음보살은 다양한 형상으로 모셔져 왔다. 특히 그 중에서 대표적인 존상으로 6관음을 들 수 있다. 6관음이란 성(聖)관음, 천수천안관음, 마두관음, 십일면관음, 준제관음 혹은 불공견색관음, 여의륜관음을 말하는데 이 가운데 성관음이 본신이고 나머지는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 시현(示現)한 변화신들이다.
관세음보살은 대체로 손에 연꽃을 들고 있다. 연꽃은 본래 중생이 갖추고 있는 불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꽃이 완전히 피어난 것은 불성이 드러난 성불을 의미하고 아직 덜 핀 봉오리는 불성이 번뇌에 물들지 않은 것을 상징한다.십일면의 얼굴을 지닌 관세음보살은 자비상·진노상·대폭소상등 중생을 제도할 때마다 여러형태의 얼굴을 말한다.

관음전의 후불탱화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의 후불탱화에는 주존이 관세음보살이 되고 그 협시로서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등장한다. 관음탱화 역시 아주 다양한 모습으로 모셔지는데, 그 대표적인 것으로 성관음과 십일면관음, 천수천안관음 등을 들 수 있다.
성관음은 온몸을 백의로 덮고 있거나 대체로 천의를 입고 있다. 또한 천의를 입은 위에 투명한 사라를 머리에만 덮기도 하고 전신에 너울처럼 덮은 경우도 있으며 보관을 쓰고 있다. 흰 옷을 입은 관음을 특별히 ‘백의관음’이라고 하는데, 손에는 정병과 버들잎을 좌우로 들기도 하고 그 중의 하나만 들기도 하며 연꽃을 들기도 한다. 그리고 보관에는 천광왕정주여래의 화불을 장엄한다.
십일면관음 보관에는 11면의 얼굴이 묘사되어 있는데, 전후좌우 10면의 얼굴은 보살의 수행단계인 10지를 상징하고 맨위의 얼굴은 부처님의 상호로서 부처님의 과위(果位)를 나타낸다. 우리 나라에서 조성된 십일면관세음보살상의 대표적인 모습은 석굴암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편 여러 가지 인간의 재앙에 대하여 더욱 적극적인 구제의 의지를 담고 있는 관음상이 바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라 할 수 있다. 천수천안관세음은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을 가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천개의 눈과 손을 가졌다는 것은 세간을 살피고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눈과 손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수천안을 형상화 할 때는 정상적인 두 손 이외의 손들을 마치 광배처럼 등 뒤에 원형으로 안배하고 각각의 손바닥 위에 눈을 그려 천안을 표현한다.
관음탱화의 구도를 살펴보면 고려시대의 관음상들이 측면을 바라보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비해 조선시대의 수월관음도는 거의가 정면관을 취하고 있다. 관세음보살은 중앙에 화불이 장엄되고 수많은 구슬로 장식된 매우 화려한 화관을 쓰고 있는데, 그 장식이 어깨까지 내려오고 거기서부터 영락장식이 다시 천의를 따라 발 아래까지 늘어져 있어 장식적인 의도가 두드러진 화풍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가슴에서부터 대좌까지 구불거리며 내려오는 천의의 복잡한 흐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전체적으로 안정감 있고 짜임새 있는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극락보전


보제루 맞은 편에는 극락보전이 있습니다. 극락전 혹은 극락보전은 서방정토 극락세계의 교주이시며 중생들의 왕생극락을 인도하시는 아미타부처님과 그 협시보살들을 모신 법당입니다. 사찰에 따라서 미타전, 아미타전, 무량수전, 수광전이라고도 하는데 천은사는 대웅전 대신 극락보전이 사찰의 주된 전각입니다. 극락보전은1774년 혜암선사가 중수하면서 세운 전각으로서 조선 중기 이후의 전통적 다포계 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현재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 50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높직한 방형의 장대석으로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민흘림의 둥근 기둥을 올렸습니다. 전체적으로 아담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을 줍니다.
안에는 불단에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관음, 대세지보살이 협시한 삼존불상이 있고 그 뒤에 보물 제924호인 아미타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그 밖의 불화로는 삼장탱화, 신중탱화 및 후불벽화로서 수월관음도가 있는데, 삼장탱화는 1776(영조52)에, 신중탱화는 1833년(순조33)에 봉안된 것입니다. 현판 및 상량문으로서는 1886년(고종23)의 〈개금불사동참대시주〉와 근래의 〈법당상량문〉이 있고, 그 밖에 동종과 괘불함도 있다. 극락보전 앞에는 최근에 조성한 석등이 있습니다.
극락보전은 앞면3칸, 옆면3칸의 팔작지붕이며 민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는 창방과 평방을 걸고 공포를 구성하였는데 포작은 외 3출목, 내 4출목의 다포양식으로 상부에는 계두와 연봉이 붙어 있고 중앙칸 기둥 위로는 봉두장식이 있는 등 전반적으로 화려하다. 주간포(柱間包)는 각 간 모두에 2구씩 배치하였다. 가구는 5양구조로서 종량 위로는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창호는 정면 3간 모두 3분합문으로 중앙칸은 소슬빗꽃살, 양 협간은 정자살과 빗살(중앙부)양식으로 되어 있다.




극락보전의 부처님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부처님과 그분의 협시보살로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혹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모셔진다.일찍이 아미타부처님이 법장비구로 수행하던 시절에 그 유명한 48대원을 세워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모든 것이 아름답기 그지없는 서방의 극락정토를 건설하셨다고 한다. 그때 세웠던 서원에 따라 누구나 일념으로 ‘아미타불’이란 명호만을 불러도 극락에 왕생시켜 괴로움을 물리치고 불도에 정진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대자대비하신 분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아미타불신앙은 예로부터 사후신앙과 관련하여 서민들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아 왔다. 따라서 전국의 사찰에는 아미타부처님이 석가모니부처님 다음으로 많이 모셔져 있다. 아미타부처님은 설법인을 취하고 있거나 미타정인(九品印)이라고 부르는 다양한 수인을 하고 계신다.

극락보전의 후불탱화


극락보전의 후불탱화에는 주존이 설법인이나 미타정인을 취한 아미타부처님이며 좌우 협시보살로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혹은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배치된다. 그런데 아미타불탱화는 석가모니부처님과 아미타부처님의 주존상과 협시보살만 다를 뿐 대웅전의 후불탱화인 영산회상도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가 통례이다. 왜냐하면 아미타신앙은 『정토 3부경』에 의한 신앙인데, 이 경전들을 설하신 분이 바로 석가모니부처님이고 듣는 이가 『법화경』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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