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스님 인사말
새벽녘 수홍루에 서서 물안개가 퍼져나가는 시간을 바라봅니다.
안개 속에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
간혹 흔들리는 나뭇잎,
제가 서 있는 다리 위에 작은 생명체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으니
저는 시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무더위가 시작되었습니다.
늘 그러하듯 일상의 기도 속에 모두의 안녕을 발원합니다.
바이러스는 더 영악해지고 사람들의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지고 있습니다. ‘내려놓으라’ 무심히 말하고 싶지만
쉽지 않는 일이기에 수행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 같습니다.
산사의 여름도 특별할 것은 없습니다. 지리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청량한 물소리에
마음 한자락 맡겨놓으면 욕심도 근심도 사라질 것 같지만 그건 그냥 그림에 불과합니다.
타인이 해 줄 수 있는 것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천은사는 그런 공간을 내어 줄 수 있습니다. 사방으로 문이 열린 보제루,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끊임없이 나를 내려놓게 할 기도전각, 솔솔한 생각이 묻혀 갈 숲과 계곡이 바로 그곳입니다.
저는 오늘도 도량을 걸으며 내려놓고 채우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인연 지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며 천은사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을 환영합니다.
천은사 주지 대진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