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천은사 댓글 0건 조회 894회 작성일 18-05-14 17:34

본문

부도(浮屠)는 부두(浮頭), 불도(佛圖), 포도(蒲圖)등으로 다양하게 표기되기도 합니다. 어원적으로는 부처님을 뜻하는 인도의 옛말 붓다(Buddha)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탑을 뜻하는 스투파에서 나왔다고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부도라고 하면 스님들의 사리를 모신 승탑을 의미합니다.우리 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뒤부터는 주검을 화장하여 그 유골을 거두는 장골(藏骨)이라는 불교식 장제가 널리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부도가 건립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선종이 크게 일어남에 따라 스님들의 지위가 높아져 불탑처럼 스님의 부도도 많이 건립하게 되었습니다.부처님의 진신사리나 부처님을 상징하는 불경과 불상 등 법신사리를 봉안한 불탑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곳에 건립하는 반면에 승탑인 부도는 사찰 주변의 호젓한 곳에 석비와 함께 조영되었습니다.
부도는 불탑과 구분하여 단층의 건물 모양을 하고 있으며 고려시대부터는 석등이 함께 조성되기도 하였습니다. 부도는 기본적으로 팔각원당형과 종형 또는 복발형의 두 가지 형식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불탑과 마찬가지로 기단부, 탑신부, 상륜부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륜부는 불탑보다 간단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탑비(塔碑)는 고승의 부도에 부속되어 석조로 조영되는 것으로써 일반적으로 대왕의 석비나 묘비와 그 형태는 동일하나 불교의 유물인 까닭에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탑비에는 고승의 일평생 행적이 건립 년월일과 함께 새겨 지고 있어, 그 비문의 내용이 역사적으로 귀중한 사료가 되고 있습니다. 또한 서체는 금석학의 입장에서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기도 한다. 탑비는 맨 밑에 구부(龜趺)가 조각되고, 그 위에 비신(碑身)이 세워지며, 상부에는 용 머리가 구름과 함께 화려하게 조각 장식되어 집니다.
천은사 부도전은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 좌측(향우)으로 약간 언덕인 산비탈에 석비(石碑) 2기와 함께 10여기 부도가 집중되어 있습니다.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속한 것들입니다. 부도가 조사를 숭배하고 이를 기리는 문손들의 공경심에서 우러나온 작업이라면 통일 신라시대 이후 계속하여 이어졌을 법도 한데 고려중기 이후 조선초기까지의 기간이 공백으로 남아있으니 이점에 대해서는 별도의 과제로 남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s_2_1_1_1.jpg

 

범란당 부도


연화문을 엷게 조식한 원형의 대좌에 상후하박인 고복형의 탑신을 얹어놓았다. 옥개석은 방형으로 상면에는 전후좌우 사방에 세줄의 기왓골형을 조각하였으며 그 위에 보주를 표출하였다. 탑신 전면에는 「범난당영재탑(梵鸞堂英宰塔)」(자경 7cm)이라 음각명문하였고 뒷면에는 「불기이구오육년경향법려입(佛紀二九五六年京鄕法侶立)」(자경 3.7cm)이라 썼다.위 명문에 의하면 이 부도는 1929년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총고 128cm, 대좌직경 48cm)

s_2_1_1_2.jpg

 

용담당 부도


이 부도는 천은사부도군(일주문옆)이 있는 곳에서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숲속에 위치하고 있다. 천은사 부도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부도이다. 대좌는 원형인데 앙연이 조식되었으며 그 사이에 기둥을 세워 8면을 구분하였다. 탑신은 타원형인 고복형으로 하단에 예리한 꽃잎을 장식한 16엽연화문이 조각되었다. 역시 탑신 상단부에도 16엽연화문이 엷게 장식되었다. 탑신 전면에 「용담당(龍潭堂)」(자경 15cm)이라는 당호를 새겨놓았다. 상륜은 별석으로 하여 노반과 보륜·보주를 올려놓았다.(총고 170cm, 대좌직경 75cm)
부도 바로 앞에는 이 부도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석비가 있다. 비석크기는 총고 93cm, 폭 377.7cm, 두께 10.4cm로 전면에 「용담대화상사리탑(龍潭大和尙舍利塔)」(자경 6.3cm)이라 명문하였으며 뒷면에는 「숭정기원후임우십월일입 합사 전영 도감진초 별좌포성 주지 책영 홍주 차준 환척(崇禎紀元後壬午十月日立 合寺 全營 都監震楚 別座抱性 住持 策英 洪主 此俊 幻倜)」라 음각하였다.
위 연대는 석비가 중앙에 균열되어 확실치는 않으나 "삼(三)"자가 결락된 것으로 보이는데 위"삼(三)"자가 확실하다면 위 연대는 1762년(임우, 영조38)으로 보아 틀림없을 것같다. 왜냐하면 남원출신인 "용담당"의 입적연대가 1762년이기 때문이다. 용담은 조관스님(1700∼1762)의 법호(法號)로서 전라남도 남원출신이며 19세기 감노사(지금의 천은사)에서 삭발하고 영·호남의 명사들을 찾아 선(禪)과 교(敎)를 두루 섭렵하였다
 


 s_2_1_1_3.jpg

Emotion Icon영해당 부도


기단부에 중석이 없는 앙·복련이 장식되고 그위에 유곽이 없는 9개의 유듀만이 표출된 고복형의 탑신이 올려져 있다. 상륜은 앙련이 조식된 보주가 안치되어있다. 전면)에 「영해당정원지탑(影海堂正源之塔)」(자경 5cm)이라 명문하고 후면에는 「불기이오삼사년이월일(佛紀二五三四年二月日)」(자경 4cm)이라 썼다. 이 부도는 최근에 세운 것이다. (총고 170cm)

 

s_2_1_1_4.jpg

Emotion Icon印大부도


비교적 잘다듬어진 8엽의 앙연을 조식한 원형의 대좌 위에 고복형의 탑신을 얹어놓았으며 그 위로는 4각형의 넓고 큰 옥개석을 올려놓았다. 옥개석 상면으로는 우동마루가 있고 그 사이에 기왓골이 조식되었다. 상륜부는 별석으로 하여 노반과 복발·보륜·보주를 장식하였다. 탑신에 당호의 명문이 마모되어 그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알 수가 없다. 조성시기는 조선후기로 추정된다. (총고 170cm, 대좌직경 66cm)

 

s_2_1_1_5.jpg

Emotion Icon성당대사(性堂大師) 부도


비자연석을 약간 다음에 대좌로 삼고 그위에 별석으로 탑신을 올려놓았다. 탑신은 하후상박형의 석종형인데 하단에 두줄의 양각띠를 두르고 상단은 네군데에 유곽과 그 안에 9개의 유두를 조식하였다. 탑신전면에「성당대사(性堂大師)」(자경 8cm)라 명문하고 조성연대는 기록하지 않았다.상륜부는 탑신과 일석으로 하여 노반과 보륜·보주를 안치하였다. 조성시기는 조선후기로 추정된다. (총고 140cm)
 

s_2_1_1_6.jpg

Emotion Icon장성서씨 부도


천은사의 10여기 부도중 맨앞줄에 위치하고 있다. 지대석 없는 연화문을 조석한 앙연의 원형대좌에 반구형의 탑신을 앉히고 그 위로 방형의 옥개석이 연결되었다. 옥개석 상면은 각 모서리에 우동이 보이고 각4면으로는 팔작지붕형인 합각이 모각되었으며 정상에는 일석으로 하여 보주를 앉혔다.부도의 전면(前面)에는 「장성서씨사리탑」(자경 9cm)이라 쓰고 뒷면으로는 「씨칠십사가경이년정사치출사리무년이월자김추동입(氏七十四嘉慶二年丁巳齒出舍利戊年二月子金秋東立)」(자경 4cm)이라 음각하였다.위 내용에 의하면, 1797년(정조(正祖 21) 74세로 입면한 장성서씨의 치아사리를 그 다음해인 1798년(무오)에 그 아들 김추동이 세운 보도임을 알 수 있다.(총고 130cm, 대좌직경 50cm)
 

s_2_1_1_7.jpg

Emotion Icon현공처사 부도


자연암반을 지대석으로 삼아 그 위로 원형의 대좌 탑신과 옥개석을 올려놓았다. 대좌는 원형으로 아무런 조식이 없으며 탑신은 고복형인데 전면에 「현공처사박」(자경 4.5cm)이라 음각하였으나 밑부분이 판독불능이다. 후면에도 역시 장방형의 액면을 모각하고 그 안에 글자를 새겼으나 마모가 심해 판독을 할 수 없다.옥개석은 8각으로 일부가 파손되었으며 상면에는 우동마루가 표출되었으며 전각에 이르러서는 약간의 반전을 보였다. 상륜부는 옥개석과 일석으로 하였고 3단의 원형띠를 두르고 있다. 조성시기는 조선후기로 보인다.(총고 112cm, 대좌직경 68cm)